경제,경영

워렌버핏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 15가지 알고보자!

멀티라이터 2026. 1. 10. 21:21

 

 

 

1 껌과 코카콜라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던 6살 영업 소년
원래 버핏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오마하 동네를 돌아다니며 껌과 코카콜라를 팔던 작은 영업가였습니다. Wrigley 껌을 한 판씩 사서 문을 두드리며 팔았고, 누군가 “한 개만 살게”라고 말하면 “그러면 남은 건 제가 다 먹어야 해서요”라며 통 단위 판매만 고집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잡지와 병 콜라를 묶어서 파는 ‘세트 판매’를 시도했던 경험은, 훗날 그가 “작은 숫자 차이도 복리로 쌓인다”는 감각을 갖게 해준 첫 장사였습니다.
2 고등학생 때 40에이커 농장을 산 ‘10대 임대 사업자’
중·고등학교 시절 버핏은 새벽마다 Washington Post 신문을 돌리고, 중고 핀볼 기계를 25달러에 사서 이발소에 들여놓고 수익을 분배하는 장사를 했습니다. 이 사업은 여러 대로 늘어났고, 결국 1,200달러에 통째로 팔리죠. 그렇게 모은 돈으로 그는 14살에 네브래스카 40에이커 농장을 사버립니다. 직접 농사엔 관심이 없어 농부를 세입자로 들였고, 수익 구조까지 설계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 저축액은 9,800달러. 오늘 가치로 10만 달러가 넘는 돈으로, 어린 나이부터 완전한 ‘자본가 마인드’를 갖고 있던 셈입니다.
3 10살에 처음 가본 증권 거래소에서 인생이 바뀌다
증권 중개인이었던 아버지 덕에 10살짜리 워렌은 뉴욕 출장길에 증권거래소를 방문합니다. 전광판, 뛰어다니는 중개인들, 소리치는 거래 현장을 보고 그는 완전히 매료됩니다. 이후 그의 꿈과 상상은 모두 주식과 사업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죠. 11살에는 자신의 첫 주식을 사고 여동생 도리스에게도 3주를 사주며 “같이 이 게임을 하자”고 말합니다. 버핏에게 주식시장은 어릴 때부터 숫자놀이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무대’였습니다.
4 워렌 버핏의 인생을 바꾼 책, 《현명한 투자자》
19살의 버핏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면접에서 10분 만에 탈락을 통보받습니다. 상처받고 돌아온 그가 잡지를 넘기다 우연히 발견한 문장은 “벤저민 그레이엄이 콜럼비아에서 강의한다”. 이미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느꼈던 그는 즉시 지원했고 합격합니다. 그는 나중에 “하버드에서 떨어진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말하죠. 실패를 곧장 진로 수정으로 바꾸는 현실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5 사람들 앞에 서면 토하던 청년을 바꾼 100달러짜리 강의
지금은 농담을 던지는 ‘토크쇼형 CEO’지만, 젊은 버핏은 발표 공포증이 심해 발표 수업을 피해 다니고 구토까지 했습니다. 이를 고치기 위해 데일 카네기 화법 강의를 들었고, 매주 억지로 발표를 하면서 공포를 극복합니다. 그의 집무실에 걸린 유일한 졸업장은 네브래스카·콜럼비아 학위가 아니라 이 카네기 수료증입니다. “투자 실력보다 말하기를 고친 게 더 중요했다”고 말할 정도로 인생을 바꾼 선택이었습니다.
6 우쿨렐레로 시작된 짝사랑, 그리고 평생의 악기
워렌은 여름 알바 중 만난 베티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이미 우쿨렐레를 잘 치는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진 건 우쿨렐레 때문이다”라고 생각하고 밤마다 연습했지만 베티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죠. 그러나 우쿨렐레는 훗날 아내 수지의 아버지와 음악으로 교감하게 해 준 연결 고리가 됩니다. 이후 버핏은 주주총회, 자선 행사, 중국 방송까지 우쿨렐레를 들고 등장하는 사람으로 남습니다. 인생의 선택들을 이어 준 상징 같은 악기였던 셈입니다.
7 1958년에 산 3만1,500달러짜리 집을 아직도 안 바꾸는 이유
버핏은 1958년 3만1,500달러에 산 집에서 지금도 살아갑니다. 집값이 수천 배 올랐고, 그는 호화 맨션을 살 수 있었지만 굳이 바꾸지 않았습니다. “내 생애 세 번째로 좋은 투자”라며, 60년의 추억을 다른 집과 바꿀 이유가 없다고 말하죠. 이 동네에서는 “콜라 마시는 옆집 할아버지가 사실 세계적인 투자자였다”는 풍경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됩니다.
8 “나는 4분의 1이 콜라로 이루어진 사람”이라는 괴상한 식단
버핏은 하루 다섯 캔 이상의 코카콜라를 마시며 “내 2,700칼로리 중 4분의 1은 콜라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아침으로 초코칩 아이스크림이나 오레오를 먹기도 하고 “사망률이 가장 낮은 나이는 6살이길래, 6살 아이처럼 먹는다”고 농담합니다. 의사들은 기겁할 식단이지만, 그는 “행복이 수명보다 더 중요하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먹고 사는 방식을 고집합니다.
9 주식시장 기분 따라 고르는 맥도날드 2.61달러 vs 3.17달러 세트
다큐멘터리 〈Becoming Warren Buffett〉에서 버핏은 매일 드라이브 스루에 들릅니다. 시장이 좋지 않은 날은 2.61달러 메뉴, 괜찮으면 2.95달러, 시장이 오르고 있으면 3.17달러 베이컨·계란·치즈 머핀 세트를 주문합니다. 전날 밤 잔돈까지 맞춰 놓는 이 습관은, 거대한 자금을 굴리는 그가 ‘작은 돈도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10 “메일은 평생 한 통만”… 기술과 거리를 둔 아날로그 CEO
버핏은 스마트폰도 거의 쓰지 않고 이메일도 평생 단 한 통만 보냈다고 말합니다. 이 이메일은 MS의 제프 레이키스에게 보낸 것으로, 법정 자료로 공개되며 “첫 번째이자 마지막 이메일”이라고 선언해 버리죠. 손 편지와 전화, 직접 만남을 선호하는 구식 방식 때문에 “IT를 모르는 노인”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 덕에 닷컴 버블 때도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11 “브리지는 내 인생 최고의 게임” 빌 게이츠와 8시간씩 카드 치는 90대
버핏은 브리지 중독자라며 하루 8시간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계적 선수 샤론 오스버그와 파트너로 활동하며 대회도 함께 다닙니다. 빌 게이츠와도 자주 카드판을 벌이며, 일을 마치고도 또 게임을 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브리지는 확률 계산, 패턴 분석, 파트너십이 중요한 게임인데, 그의 투자 철학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12 빌 게이츠와의 첫 만남: “30분만 있다 올게”가 몇 시간 수다로 바뀐 날
1991년, 빌 게이츠는 어머니 부탁으로 마지못해 버핏을 만나러 갑니다. “30분만 들렀다 올게요”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몇 시간을 나란히 앉아 이야기했습니다. 버핏은 게이츠에게 “앞으로 10년, 컴퓨터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를 물었고,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네트워크 효과를 설명하며 둘은 즉시 통합니다. 서로 다른 세대·산업임에도 ‘미래를 확률로 계산하는 방식’이 같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둘은 평생 친구가 됩니다.
13 찰리 멍거와의 1959년 저녁 식사, 60년 동업의 시작
버핏과 멍거는 첫 만남부터 투자 이야기와 농담을 끝없이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멍거는 “싼 주식 꽁초 줍기”에서 벗어나 좋은 회사를 적당한 가격에 오래 들고 가라는 철학을 전했고, 버핏은 이를 받아들여 브랜드 비즈니스에 베팅하기 시작합니다. 주주총회에서 서로를 가볍게 디스하며 웃던 두 사람의 뒤에는, 수십 년간 서로의 약점을 보완한 깊은 신뢰가 있습니다.
14 워싱턴포스트 캐서린 그레이엄에게 보낸 편지와 “몰래 안 팔겠다”는 약속
1970년대 버핏은 워싱턴포스트 지분을 대량 매입하며,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에게 “당신 동의 없이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위협하지 않겠다, 그리고 몰래 팔지도 않겠다”는 편지를 보냅니다.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장기적 파트너가 되고 싶다는 메시지였죠. 이후 그는 이사회에 들어가 재무·전략을 돕고, 그레이엄은 언론과 정치의 세계를 버핏에게 보여주는 관계가 됩니다. 돈보다 신뢰를 올려놓는 그의 태도가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15 주주 서한을 쓸 때마다 맨 위에 적는 이름, “딜리트”되지만 남는 마음
버핏의 주주 서한은 세계적 투자자들이 교과서처럼 읽는 문서입니다. 그런데 그는 초안 맨 위에 항상 “Dear Doris and Bertie”라고 적습니다. 여동생들에게 설명하듯 쓰면 더 솔직하고 명확한 글이 되기 때문이죠. 초안을 다 쓰고 나서야 그 이름을 지우고 공식 버전으로 바꿉니다. 수십 조의 자산을 굴리는 사람에게도, 마음속에서는 가족에게 설명하듯 말하려는 태도가 남아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