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사실들

일론머스크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 15가지 알고보자!

멀티라이터 2026. 1. 25. 10:31

🚀 일론 머스크의 15가지 미친 에피소드

책벌레 소년이 우주를 꿈꾸기까지,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1. 📖 "브리태니커를 통째로 읽었다고?" 괴짜 천재의 탄생

프리토리아에서 자란 머스크는 어릴 때부터 말 그대로 책에 파묻혀 사는 아이였습니다. 학교·동네 도서관 책을 거의 다 읽어버리고, 더 읽을 게 없자 아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통째로 읽었다는 일화가 전기 작가 애슐리 밴스 책에 나옵니다. 심지어 백과사전을 두 번이나 읽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지죠. 가족들 말로는, 다른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 때도 엘론은 소파 한쪽에 파묻혀 SF,판타지,과학책을 붙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또래들 사이에서는 “말수 적은 이상한 책벌레”로 보였지만, 이때 쌓인 지식과 상상력이 나중에 전기차,로켓 같은 무모한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사업으로 밀어붙이는 밑바탕이 됩니다.

2. 👾 12살에 첫 수익화 성공! 그가 만든 게임 'Blastar'

엘론이 처음으로 돈을 번 “제품”은 차도, 로켓도 아니라 작은 컴퓨터 게임이었습니다. 12살 때 스스로 BASIC을 익혀 만든 우주 슈팅 게임 ‘Blastar’ 소스 코드를 잡지사에 보내 500달러 정도를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남아공 PC 잡지에 인쇄된 코드를 보면, 적선,연료,레이저 같은 요소까지 나름 구색을 갖춘 게임이었죠. 이때부터 이미 “취미로 뭔가를 만들다가, 이걸로 돈을 받네?”라는 감각을 몸으로 배운 셈입니다. 훗날 그가 인터넷 은행, 온라인 결제, 우주 로켓까지 전부 “소프트웨어 문제”처럼 접근하는 습관도 이런 경험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겠죠.

3. 🤕 "계단에서 던져졌다" 병원에 실려간 끔찍한 학창시절

머스크가 다닌 남아공의 남학교는 분위기가 꽤 거칠었던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한 번은 친구와 다툰 뒤, 다른 아이들 여러 명에게 둘러싸여 구타를 당하고 콘크리트 계단 밑으로 내던져져 병원에 실려 갔다고 회상합니다. 당시를 다룬 기사와 전기를 보면, 두통과 상처로 며칠간 병원에 누워 지내야 할 정도로 심한 사건이었죠. 이런 사건을 겪고 나면, 사람 사이에서 먼저 “나를 지키는 법”부터 배우게 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일에서 머스크가 배운 건 멋진 성공담이 아니라 “폭력은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다”라는 아주 현실적인 감각이었다는 점입니다.

4. ✈️ 17살의 탈출, 가방 하나 메고 무작정 캐나다로

고등학교를 마친 머스크는 17살이 되던 1989년, 캐나다로 혼자 건너갑니다. 남아공의 정치 상황과 군 복무 문제를 피하고, 언젠가 미국으로 건너가 IT,우주 분야에서 일해 보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전해지죠. 캐나다에는 어머니 메이 머스크 쪽 친척들이 일부 있었지만, 처음엔 짐을 들고 친척 집을 전전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돈이 넉넉지 않다 보니 여름에는 곡물 창고에서 곡식 자루를 나르거나 농장에서 곡물을 뒤집는 일 같은, 몸으로 때우는 일자리를 닥치는 대로 하게 됩니다. 나중에 머스크는 “그때부터 이미, 편한 길을 택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5. 🔥 시급 최고가 알바의 정체는 '지옥의 보일러 청소'

캐나다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로 그는 “보일러 청소”를 여러 번 꼽습니다. 취업 알선소 직원에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 중에 시급이 제일 높은 일을 달라”고 했다가, 거대한 산업용 보일러 안에 보호복을 입고 기어 들어가 찌꺼기를 삽으로 퍼내는 일을 배정받았다는 유명한 일화죠. 체온보다 높은 온도와 먼지 때문에 여러 명이 첫날에 바로 그만뒀고, 머스크도 며칠 버티다 결국 포기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나중에 이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덕분에, 웬만한 힘든 일은 비교적 담담하게 견딜 수 있게 됐다”고 말합니다. 기술이나 사업 수완 이전에, 꽤 고된 육체노동부터 겪고 올라온 셈입니다.

6. 🌭 "하루 1달러로 생존 가능?" 스스로를 실험대에 올리다

퀸즈대,펜실베이니아대 재학 시절 머스크는 스스로에게 이상한 실험을 하나 걸었습니다. “만약 창업을 했다가 돈을 못 벌어도, 정말 아주 적은 돈으로 버틸 수 있을까?”를 확인하기 위해, 한 달 식비를 30달러(하루 1달러)로 제한하고 살아본 겁니다. 산 소시지와 오렌지, 그리고 가끔 파스타와 토마토 소스를 번갈아 먹으며 한 달을 버텼다고 그가 직접 인터뷰에서 말했죠. 결론은 “생각보다 살 수 있더라”였고, 이때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생겨, 졸업 후 바로 창업 쪽으로 몸을 던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실험 덕분에, 그는 나중에 수십억 달러를 굴면서도 여전히 “최악의 경우”를 먼저 계산하는 습관을 유지하게 됩니다.

7. 🤫 학비는 광란의 파티로? 전설의 '비밀 5달러 클럽'

펜실베이니아대 시절, 머스크와 룸메이트 아데오 레시(Adeo Ressi)는 10여 개 방이 달린 큰 집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이 집을 주말마다 사실상 ‘불법 클럽’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입장료는 5달러, 최대 수백 명이 몰려드는 파티에서 학생들은 네온 조명과 형광 페인트로 칠해진 벽 사이에서 밤새 춤을 췄다고 합니다. 머스크는 이 파티에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2층 난간이나 주방 한쪽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며 돈 계산과 안전을 챙기는 쪽에 더 집중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 메이 머스크가 아들 집에 들렀다가,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 코트 보관을 도우며 부엌에 식칼을 챙겨 놓고 손님들을 지켜봤다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즐겁게 노는 사이, 한쪽에서 조용히 사업 계산을 하고 있던 아들”이라는 어머니의 기억은, 지금 우리가 아는 머스크의 모습과도 묘하게 겹칩니다.

8. 🚪 로비에서 문전박대 당한 청년, 창업을 결심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로 간 머스크는 처음엔 남들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가 한때 동경하던 넷스케이프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고, 직접 사무실 로비까지 갔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결국 누구에게도 말을 못 걸고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전기에 등장합니다. 그 순간 그는 “이럴 바엔 내가 직접 인터넷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죠. 그렇게 해서 동생 킴벌과 함께 시작한 회사가, 나중에 수억 달러에 팔리는 ‘Zip2’의 시작입니다. 처음부터 “창업이 꿈이었던 사람”이라기보다는, 문전박대를 당하자 “그럼 내가 직접 길을 뚫겠다”고 방향을 튼 케이스에 가깝습니다.

9. 🚿 사무실에서 쪽잠 자고, 샤워는 옆집 YMCA에서?

Zip2 초창기에는 돈이 너무 없어서, 머스크 형제는 아예 사무실을 ‘집 겸 회사’로 쓰기로 합니다. 월세가 싼 허름한 사무실을 구해 낮에는 직원들이 일하고, 밤에는 바닥에서 자는 방식이었죠. 둘은 샤워를 하기 위해 근처 YMCA로 걸어가곤 했다고 여러 인터뷰와 기사에 나옵니다. 인터넷 회선도 따로 돈 주고 깔 여유가 없어, 아래층 인터넷 업체 사무실 천장에 구멍을 뚫고 랜선을 끌어올려 썼다는 일화는 지금 봐도 상상 이상으로 ‘해커스러운’ 장면입니다. 이 시기는 나중에 그가 “내가 제일 건강하던 시절이기도 했다”고 농담처럼 회상하는, 아주 가난하지만 에너지가 넘치던 시기였습니다.

10. 🏖️ 휴가 갔더니 해고? 페이팔 CEO 축출 사건의 전말

Zip2를 매각한 뒤 머스크는 온라인 은행 X.com을 만들고, 경쟁사 콘피니티(Confinity)와 합쳐져 나온 이름이 우리가 아는 ‘페이팔(PayPal)’입니다. 하지만 서비스가 성장하던 2000년, 그는 CEO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전기와 기사들을 보면, 그가 회사의 기술 방향(운영체제 교체 등)을 두고 다른 경영진과 갈등을 겪은 끝에, 휴가를 떠난 사이 이사회 표결로 CEO가 교체됐다고 전합니다. 머스크 입장에서는 꽤 쓰라린 경험이었겠지만, 그는 주주로 남아 회사가 성공하도록 돕는 길을 택했고, 결국 페이팔 매각으로 다시 한 번 큰 자본을 손에 쥐게 됩니다. “한 번 밀려난 자리”였지만, 그 경험이 이후 그가 다른 회사에서 지분 구조와 의사결정권을 더 집착해서 챙기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11. 🏎️ "내 차 성능 볼래?" 10억짜리 슈퍼카를 박살낸 순간

Zip2 매각 후 머스크가 산 대표적인 ‘사치품’은 슈퍼카 맥라렌 F1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차는 그에게 거의 곧바로 “값비싼 교훈”을 안겨줍니다. 초기 투자자였던 피터 틸과 함께 차를 몰고 가다 “이 차가 어떻게 가는지 보여 줄게”라며 급가속을 했다가, 도로에서 미끄러져 크게 사고를 낸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죠. 차는 크게 파손됐고, 당시 충돌 피해 보험조차 들어 있지 않았다고 그가 직접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크게 다치지 않았고, 머스크는 나중에 이 일을 웃으면서 회고하지만, “물리 법칙은 아무리 부자라도 예외가 없다”는 걸 온몸으로 배운 사건이기도 합니다.

12. 📉 "잔고 0원 직전"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운명이 갈린 해

머스크가 직접 “내 인생 최악의 해”라고 부른 2008년에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 둘 다 벼랑 끝에 서 있었습니다. 스페이스X는 첫 세 번의 팰컨 1 로켓 발사가 모두 실패로 끝났고, 테슬라는 생산 지연과 자금난으로 문을 닫을 위험에 처해 있었죠. 그는 페이팔 매각으로 번 돈을 이미 대부분 두 회사에 쏟아붓고 있었고,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생활비를 빌려 쓰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결국 네 번째 로켓 발사가 성공하고, 그 해 말 NASA 화물 수송 계약과 테슬라 투자 유치가 이어지면서 두 회사가 동시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납니다. “다른 사람 돈을 굴리는 투자자”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잔고까지 바닥을 드러내며 버틴 창업자라는 점이 이 에피소드에서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13. 🛌 억만장자가 공장 시멘트 바닥에서 잠든 이유

2017~2018년, 테슬라 모델 3 양산 초기에 머스크는 스스로 그 시기를 “production hell(생산 지옥)”이라고 불렀습니다. 조립 라인과 자동화 설비가 꼬이면서 생산 목표를 맞추지 못하자, 그는 아예 네바다·프리몬트 공장 바닥에서 침낭을 깔고 자며 문제를 잡는 생활을 했다고 여러 매체가 전합니다. 직원들이 퇴근한 뒤에도 라인 옆에서 노트북을 펴고 설비 로그를 보거나, 새 공정을 직접 테스트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죠. 머스크는 “내가 직원들에게 주말 야근을 요구하면서, 나 혼자 편한 집 침대에서 잘 수는 없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방식이 모두에게 좋은 리더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몸으로 같이 버티는 스타일”이라는 건 분명히 보여준 장면입니다.

14. 📺 데스노트, 에반게리온... 의외로 '진성 덕후'였다?

머스크가 애니메이션 팬이라는 사실은 본인이 X(옛 트위터)에 올린 추천 목록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여러 차례 좋아하는 작품으로 《데스노트》, 《신세기 에반게리온》, 《공각기동대》, 《강철의 연금술사》, 《모노노케 히메》 같은 작품들을 언급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 기술·권력·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라는 점이죠. 단순한 힐링물보다는, 인류의 미래·기술·정체성을 묻는 다소 무거운 이야기에 끌리는 사람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우주 식민지, 인공지능,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이 이런 작품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지도 조금 감이 오실 겁니다.

15. ❌ 아들 이름까지? 못 말리는 'X' 사랑의 역사

머스크를 따라다니는 글자가 하나 있다면 단연 ‘X’입니다. 첫 인터넷 은행 이름이었던 X.com에서 시작해, 우주 회사는 SpaceX, 인공지능 회사는 xAI, 그리고 트위터를 인수한 뒤에는 회사와 서비스 이름을 아예 ‘X’로 바꿔 버렸습니다. 아들 이름에도 X가 들어가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죠. 어린 시절부터 수학·물리·SF에 빠져 살았던 그에게, 미지의 것과 미지의 좌표를 의미하는 X는 일종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사람마다 머스크를 보는 시선은 다르겠지만, 최소한 이 한 글자만큼은 그의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가장 솔직한 TMI”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