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210

미스터 클린이라 불린 인텔 창업자!

인텔의 창업자중에 한명인 앤디그로브는 인텔의 여러 제도를 만들어 냈다. 회사의 직원 직원평가제도 역시 앤디 그로브가 만들어 낸것이다. 하지만 존리드라는 직원이 평가제도에 불만을 품고서 폭발한적이 있었는데 앤디 그로브는 그를 달래기 위해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그사건이 있은후에 앤디 그로브는 회사에 불만을 가진 사람에게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는데 이때부터 이를 사람들인 존리드 기념 점심식사라고 불렀다. 사직 면담제도도 앤디 그로브의 작품이다.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 프로세서 개발에 깊이 관여했던 직원인 파긴이 어느날 갑자기 사직서를 낸다. 원래 앤디 그로브는 파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면담을 가지게 된다. 또한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에게서 회사의 불만을 듣고서 여러가지로 참고하려고 했다..

IT 2009.04.30

델컴퓨터의 승리하는 문화 위닝컬쳐!

마이클델이 직원문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위닝컬쳐(Winnig culture) 였다. 그는직원들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승리를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문화가 회사의 중요한 정신이 되기를 바랬다. 회사가 처음 백만달러 매출을 달성했을 때 1000000$라고 쓰여진 컵모양의 케이크를 모든 직원들에게 돌려서 승리를 자축했고 더 큰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자고 당부하였다. 회사의 위닝컬쳐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건은 델이 유독 부진했던 서버시장에서 재도약을 선언 했을 때이다. 델은 당시 10위였는데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회사의 특성상 10위정도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킬수가 없었다. 당시 델은 월마다 천개의 서버를 팔았는데 그가 새롭게 월 2만개를 팔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마이..

IT 2009.04.09

차세대 IT황제는 앱스토어 전쟁의 승자다.

저는 모바일이야 말로 차세대 IT 황제를 결정하는 부분이 될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PC의 제왕이었던 애플 그리고 소프트웨어 황제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인터넷의 황태자 구글이 바로 모바일이라는 분야에서 싸우고 있고.... 결국 모바일에서 승리하는 자가 IT 전체를 다스리는 절대자가 될것이라고 본거였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하드웨어에 편중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단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아이팟의 성공은 아이팟이라는 기계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아이튠스 덕분이었다는것을 잘 알고 계실겁니다. 어차피 모바일 그거 하나는 기계 하나에 불과합니다. 차세대 IT 절대자는 모바일 기기 그거 하나에 의해서 결판나는 것이 아니라.. 앱스토어에 의해서 결정날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웹 3.0 이라는것도 바로 그..

IT 2009.04.02

어려움과 결정의 순간마다 손정의는 책을 읽었다.

손정의는 1978년 버클리 대학 재학중에 두살 연상의 일본 여자인 우미와 결혼했다. 미국 유학후에 손정의는 우선 어학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녔다. 마침 영어학원에는 우미도 함께 다녔다. 손정의는 우미에게 완전히 반해 버려서 홀리네임즈 칼리지의 학생이었던 우미와 같은 대학으로 진학할 정도였다. 우미와 결혼식을 할 때 즈음에는 손정의가 음성 인식 자동 번역기를 개발중이었다. 일에 빠져있었던 손정의는 우미와의 결혼식 약속을 깜빡하고 만다. 처음 약속했던 결혼식은 늦어서 취소됐다. 그리고 두번째 역시 손정의는 결혼식에 지각했지만 법원관계자에게 겨우 사정이야기를 하고 식을 무사히 올릴 수 있었다. 신혼 여행을 떠나며 손정의는 우미에게 나중에 거대한 저택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언약은 40이 되기전..

IT 2009.03.19

주목해볼만한 오픈캐스트의 변화!

요즘 네이버 오픈캐스트를 보면 여러 중소 언론사들의 캐스트들이 눈에 뜁니다. 뉴스캐스트에는 들어가지 못한 언론사들이 오픈캐스트를 적극활용하기 시작하는구나 정도로 치부할수도 있지만 저는 오픈캐스트 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픈캐스트는 이제 개인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뉴스캐스트에 들어가지 못한 중소 언론사들의 서비스로 전략을 바꾸었다는거죠. 그리고 저는 이러한 전략은 꽤 현명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오픈캐스트는 사실 개인이 꾸준하게 발행하기는 힘듭니다. 제가 운좋게 5200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는데 매일 하루에 하나씩 발행하는데 30분이 넘게 들어가거든요. 이걸 매일 발행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참 많은 고민을 했는데 저는 어차피 직업이 작가이고 블로그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 블로그..

IT 2009.03.06

역발상 아이디어의진수 인텔인사이드 마케팅!

IBM PC 시장의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장악하며 승승장구하던 인텔에게 새로운 골치거리가 부각되었다. 인텔의 CPU를 복제하는 업체들의 난립이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회사가 AMD였다. AMD는 인텔과 호환되는 CPU를 연속적으로 발매하였다. 인텔이 386을 판매하기 시작하자 얼마 후에 AMD는 Am386을 발매하였고 인텔이 486을 판매하자 AMD는 Am486을 발매하였다. 인텔의 광고전략은 386이나 486을 브랜드화하여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었는데 AMD와 여러 회사들이 유사 상표로 CPU를 출시하면서 인텔이 차지했던 시장을 공략하였다.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386이나 486만 들어가면 같은 제품으로 오인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텔은 386과 486등의 명칭을 다른 회사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소송을..

IT 2009.03.02

도산의 위기를 인텔은 어떻게 넘겼나?

1971년 주식을 공개한 인텔은 회사 내에 수많은 백만장자를 탄생시켰다. 메모리 칩의 상업적인 성공으로 인텔은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실리콘 밸리 최고의 기업으로 칭송받았다. 창업이후 10년간 인텔의 수익율은 총매출의 25%가 넘었는데 고부가가치 산업인 메모리 산업을 사실상 독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잘나가던 인텔에게 암운이 드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일본 업체들이 메모리 시장에 본격적인 진출을 하며 인텔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메모리는 원래 장치산업이라고 불리운다. 좋은 제조장비로 많이 찍어내면 찍어낼수록 이익을 얻는다. 인텔은 반도체전문회사로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성공한 중소기업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의 NEC나 도시바는 전자기기를 만드는 대기업이었다. 이들은 모회사..

IT 2009.02.25

아이폰 게임으로 가정의 집을 구한 남자이야기

에단 니콜라스라는 30살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두아이를 가진 가장의 이야기인데요. 갑작스런 의료비 지출과 함께 악화된 경제 상태로 보너스를 받을 수 없게 된 에단 니콜라스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하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살고 있는 집을 팔아야 할 판국이었답니다. 그래서 남자는 이때 아내가 육아에 더 신경을 써준다면 대신 남자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아이폰으로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제안합니다. 아내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남자는 회사에 출근하기전과 퇴근후에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임이 바로 iShoot 이었답니다. 6주동안 만들어 낸 이 게임은 2.99달러에 팔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앱스토어는 아이폰의 응용프로그램을 다운로드 할수 있는 곳으로 15000개의 애플리..

IT 2009.02.23

MLB선수, 닌텐도 위에 자극받아 11Kg 감량하다?

박찬호선수가 뛰었던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잘아시죠? 이팀에서 새로운 마무리 투수인 히스 벨 선수가 체중이 무려 25파운드(11KG)나 감량한 채로 훈련장에 들어서서 사람들이 깜짝 놀랬는데요 그런데 이 선수가 살을 뺀것이 닌텐도 위의 인기 게임인 닌텐도 위핏 덕분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원래 야구선수들이 보면 배에서 힘이 나온다고 할정도로 대부분 통통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데요. 히스 벨 선수 역시 전형적인 MLB 선수의 몸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이 사진처럼 말이죠. ^^;; 그리고 애초 히스 벨 선수 역시 살뺄 생각은 없었답니다. 그는 오프시즌을 맞이 해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했고 그 선택은 아이들과 함께 게임하기 였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닌텐도 위핏 이였는데요. 닌텐도위핏에서..

IT 2009.02.18

블로거뉴스 통합검색에 반영해야 하는 이유!

과거 야후가 승승장구를 할 때 그들의 성공에 대한 찬양이 쏟아졌는데요. 그때 야후관계자와 언론들은 그들의 성공이유를 “휴먼터치”로 정의합니다. 즉 인터넷상의 정보를 사람들이 직접 보고서 편집을 하는 것이 야후의 강점이었던거죠. 하지만 구글은 이에 반기를 들고서 수작업이 아닌 순수한 컴퓨터 작업에 의한 검색엔진을 들고 나옵니다. 구글은 현재 검색가능한 웹페이지와 빠른 검색속도를 자랑하는데요. 재미있는것은 이때 야후는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기계적인 작업으로는 휴먼터치의 강점을 따라올수 없다면서 구글의 기술을 자사와 직접 경쟁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야후의 성공을 논하는 책에는 버젓이 이때의 상황에 대해서 야후를 칭찬하고 있을정도로 휴먼터치가 대세였던 시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이제는 ..

IT 2009.02.17